42 SEOUL 지원 동기

Life's 42 / / 2020. 2. 21. 19:38

 내가 42 SEOUL을 알게 된 건 2019년 10월,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글적글적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던 때였다. 당시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던 것을 알고 계셨던 글쓰기 담당 교직원 분께서 42 Seoul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학교에서 설명회가 있었고, 본인이 담당하던 다른 학생이 그 설명회에 참석해 보고 들은 것을 얘기해 준 것이 우연히 내 귀에까지 들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운명적이게도, 42 Seoul이 제공하는 교육 환경은 나에게 완벽히 필요한 것들만 모아놓은 것이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데에 있어 비전공자가 겪게 되는 어려움에는 공통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학과가 법과 행정학 등을 배우는 완전 문과 계열이다.) 하나는 전공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필자 또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약 1년 반 동안 프로그래밍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시간을 거의 날린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C, C++, JAVA, JSP, C# 등 10개에 이르는 언어를 기초적인 수준에서 모두 배우고 있었다. 아마 전공자가 이 얘기를 들었다면 '대체 왜?'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과거를 돌아보는 지금의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대체 왜 그러고 있었나'싶다.

 비전공자가 겪게 되는 공통적인 어려움 두 번째는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고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듣기에 개발자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취직을 하는 것의 모든 시작은 프로젝트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비전공자로서 이런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기회는 정말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비전공자의 경우에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러한 두 가지 어려움은 내가 프로그래밍을 과거 1년 반 정도 공부하다 포기하게 된 이유로 작용했다.

 프로그래밍을 멀리하게 된 것도 잠시, 막상 4학년 2학기가 되니 진로와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확실해져서 오히려 프로그래밍이 전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가치관에 따라 직업들을 바라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직업이 아주 적합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란 다음과 같다. 직업, 진로 선택에 있어 '이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야' 와 같은 생각이나 흥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직업에서 행복을 느끼는 데에 가장 중요한, 아니 다른 요인들보다도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근무 연수'이며, 해당 요소가 중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근무 연수가 많아짐에 따라 직업에서의 자율성, 영향력, 창의성을 발휘할 영역이 커진다는 것에 있다. (더 구체적인 이론은 칼 뉴포트의 <열정의 배신> 혹은 다니엘 핑크의 <드라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근무연수가 올라감에 따라 자율성, 영향력, 창의력을 모두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직업으로서 매우 적합했고, 42 Seoul은 이쪽에서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42 Seoul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앞서 말했던 '비전공자가 겪게 되는 공통적인 어려움 2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42 Seoul은 최장 24개월 동안의 학습 과정을 통해 국가적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고 공급난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모든 학습과정과 시설 이용이 교육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며, 국가적으로 월 100만 원을 교육생들에게 지급한다. 또한 우수한 스태프들이 항상 있으며 기업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들었다.(->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다.) 학습은 주로 프로젝트 기반이며, 프로젝트 외에도 수많은 개인 과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 또한 많다는 뜻이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완벽한 프로그램인 42 Seoul은 운명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을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데다, 선발이 선착순인 것도 모르고 그냥 '오늘 테스트 쳐보자'하는 마음으로 쳤는데, 치고 나서 보니 선발이 선착순이어서 놀랍기도 했고 더욱 운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참고로 테스트는 간단한 기억력 테스트와 논리력을 측정하는 게임 테스트 2단계로 진행된다.

 42 Seoul은 한 달 간의 집중 교육 기간인 La Piscine을 통과해야 본 교육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La Piscine은 프랑스어로, La는 영어에서 사물 앞에 a를 붙이듯이 프랑스어에서 여성명사 앞에 붙이는 단어다. Piscine은 수영장이라는 뜻으로, 지원자들을 수영장에 던져 살아남는 사람들만 교육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프랑스어를 쓰는 이유는 42 Seoul이라는 프로그램이 프랑스에서 먼저 시작한 42 Ecole에서 출발했기 때문이고, 앞에 따라다니는 42 라는 숫자는 42 Ecole의 설립자 Xavier Niel이 어떤 소설을 읽고 그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다음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한다. (해당 구절이 정확한 것은 아니고 필자가 기억하기에 다음과 같았다.)

"모든 것의 탄생과 출생은 42에서 출발하고, 종말과 죽음 또한 42로 맺어진다."

 La Piscine의 경우 경쟁률은 매번 다르겠지만 내 경우(1기 1차)에는 2:1 정도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뚫어야 할 경쟁률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낮은 경쟁률이다. 그러나 또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공자가 아닌 나는 전공자들과 출발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경쟁률이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42 Seoul이고 교육생으로 선발된 것도 운명적으로 느껴졌던 것 만큼, 42 Seoul의 La Piscine 과정을 통과해 해당 프로그램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바꿀 운명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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